“집이 어디세요?” “몰라요.”
한 이주여성이 집에 가지 못하고 이러 저리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관계자가 길을 안내하기 위해 집을 묻자 모른다고 답하였다. 투이 씨(가명)는 한국에 시집오기 전, 베트남에서도 정신건강이 약했다고 한다. 투이 씨는 남편이 직장 때문에 타지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가사일과 자녀 양육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댁 형님이 이혼을 하는 바람에 두 명의 아이를 추가해 돌보고 책임져야만 했다. 투이 씨는 시부모님과도 갈등을 겪고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이러한 환경과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투이 씨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아왔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우울증을 객관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우울증 자가진단테스트 BDI(Beck Depression Inventory)와 일상생활수행능력 IADL(Instumental Activities of Daily Living) 검사를 실시하려 했지만, 정상적으로 진행을 할 수 없었다. 투이 씨는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무척 떨어졌다. 혼자서 전화를 걸 수도 없었고 혼자서 약을 먹을 수도 없었으며 혼자서 장을 보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했다.
△무주 이주여성 스트레스 경험 72.7%, 장수 우울증 경험 56.4%
전라북도는 ‘2015년 전북형 다문화가족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를 실시했다. 이 연구는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용역을 맡아 전라북도 여성 결혼이민자·혼인귀화자 전수인 9452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 모집단은 7212명 중 5345명이 응답했다. 이 연구에서는 다문화가족의 정신 건강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스트레스 경험과 우울증 경험에 대해서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스트레스 경험에서 전북지역 결혼이주여성의 가족생활, 직장생활, 기타 사회생활에서 최근 2주 동안 스트레스를 느끼는 조사에서 ‘많이 느끼고 대체로 느낀 편이다’가 58.3%로 다소 높게 나타났다. 일상생활영역에서 가족생활 스트레스는 49.5%, 직장생활은 43.5%, 기타 사회생활 스트레스는 32.8%의 순으로 가족생활 스트레스가 높은 결과를 보였다.
지역별로 스트레스 경험자는 무주군 72.2%, 진안군 69.4%, 장수군 68.7%로 상당히 높은 결과가 나왔다. 또한 가정생활영역의 스트레스 경험자 비율도 전북지역에서는 이들 3곳이 차례로 높게 나타났다.
영역별 스트레스 경험은 가정생활, 직장생활, 기타 사회생활 순을 보였다.
출신국별 스트레스 경험자는 필리핀 84.3%, 일본 77.6%, 캄보디아 68.3%로 이들 3개 국가출신 여성들 10명 중 7명이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필리핀 출신 여성은 생활영역별 모든 영역부분에서 70%의 높은 스트레스 유경험 비율을 보였고, 일본과 캄보디아 출신은 가정생활영역에서 스트레스 경험자 비율이 높았다.
▲ 부부 갈등해소 부부관계 증진 교육 모습. |
우울증 경험을 알아보기 위한 ‘지난 1년 동안 연속해서 2주 이상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는 문항에서는 우울증을 호소한 비율(매우 자주 느꼈다+가끔 느낀 편이다)이 46.8%로 절반 가깝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장수군 56.4%, 순창군 53.1% 순으로 높았고, 도시와 농촌별로는 읍·면 지역에서 거주하는 여성결혼이주여성 등이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꼈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출신국별로는 필리핀 출신 여성이 60.9%로 높게 나타났고, 귀화한 결혼이주여성 46.8%, 사별 이혼 별거 상태인 경우의 결혼이주여성 71.1%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높게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015년 3월 조사전문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서울과 6대 광역시에서 만 20~59세 한국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과 행복조사’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에서 우울, 불안, 분노와 같은 정서적 문제 경험 등을 물었는데,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의심되는 비율은 각각 28%와 21%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체 대상자의 1/3정도가 우울, 불안, 분노 같은 정서적 문제를 경험한 것이기에 적지 않은 비율이다.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결혼이민자·귀화자의 경우 스트레스 경험률이 58.3%, 우울증이 46.8%로 나타났는데, 한국인의 비율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결혼이민자·혼인귀화자의 스트레스와 우울증 경험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에 대해 현장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정책담당 부서에서는 다양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정신건강이 약화되어져 있는지 좀 더 구체적인 원인 파악이 필요하다.
△우울증·스트레스 단순 정착과정으로 인식하면 안돼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2012년 4월 2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오이코스 신학대학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모두 7명이 사망했으며 4명이 부상을 당했다.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은 한국인 고수남 씨(당시 43세)였다. 고 씨는 미국으로 이민 온지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영어가 통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한국계 학생들로부터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고 무시당하기도 했다. 고 씨는 따돌림과 부적응으로 우울증을 앓았고 이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김동준 팀장은 “정착과정에서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문제를 단순히 정착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 중의 하나로 흘려보낸다면 이후 큰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면서 “극단적인 선택은 특정한 극단적인 상황의 전개 하에 발생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예방적 활동과 심리·정서적 안정을 위한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극단적인 사건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서 비롯되었다.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단순히 성장과 정착과정의 하나로 간과시켜버릴 경우 불행한 일들은 예고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북지역 결혼이민자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경험 비율이 높게 나타난 만큼 다양한 전문가 집단과 기관들이 협력해 다문화가족의 정신건강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이주여성 정서불안 대책은 악화 전에 상담·치료,주변 관심을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마가리타 씨(가명)는 어느 날 화가 난다며 시어머니에게 쓰레기통을 던졌다. 이 사건으로 시어머니는 며느리 마가리타 씨를 경찰에 신고해 조사를 받기도 했다. 마가리타 씨는 “남편이 평소에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두 명의 자녀조차 엄마를 지지해주지 않고 할머니 편만 들었던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마가리타 씨는 시집을 온지 10년이 넘었지만 한국어로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전달함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전북형 다문화가족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에 의하면 필리핀 결혼이민자들의 스트레스 경험자 비율이 84.3%로 월등히 높았다. 필리핀 결혼이민자의 우울증도 60.9%로 제일 높게 나타났다. 필리핀 결혼이민자의 스트레스와 우울증 비율이 높게 나타난 원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다른 조사가 구체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주수진씨(한국어교육 담당)는 “필리핀 이주여성의 경우 한국어보다는 영어로 대화를 하려는 경향성 때문인지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어 능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또 “필리핀 결혼이민자들의 스트레스와 우울증 비율이 월등히 높은 요인도 한국어 소통능력이 떨어지면서 그만큼 한국사회에의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편, 시부모, 자녀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결혼이주여성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다. 또 한국에서 자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부모와 이웃 등이 가까이 없음으로 인해 더욱 외롭고 초조하며 불안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게 하고 순간적 실수를 불러와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끌어내리게 한다. 따라서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심리·정서적 불안정성을 노출하고 있는 다문화가족이 있다면 상태와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 상담과 심리·정서적 안정을 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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